신을 버린 세계 - 2. 감염

습작/단편 2012. 5. 13. 12:45

2. 감염

탕! 탕!

그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었다.

“크릭?! 꺼륵…….”

세계가 뒤집어지는 재앙. 방사능마저 마구 뿌려대는 전쟁. 그만큼이나 망가져버린 것이다. 새로운 질병 한두 가지 발생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역시 이정도로는 안 쓰러지는 건가.”

설렁 질병이 산자가 아닌 죽은 자를 향한 것일지라도 이정도로 망가져버린 세상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소형 권총 따위는 호신용도 못 된다고 선생.”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 바렛이 한 마디 한다.

22구경의 작은 권총. 그다지 강한 위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근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정도의 위력은 확실하게 있는 무기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가 정상적인 인간일 때의 이야기.

곳곳에 푸른빛을 띄우고 있는 창백한 납과 같은 피부. 녹아내릴 듯 짓무른 눈과 바싹 말라비틀어진 입과 코. 어느 것 하나에서도 살아있는 기색이 보이지 않은 뻣뻣한 몸뚱아리. 그것은 이미 죽은 자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작은 권총이라지만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가슴에 명중하였는데 고통의 기색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피가 뿜어져야 하는 가슴에서는 피 대신 악취가 나는 썩은 진물이 조금 흘러내릴 뿐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움직일 뿐,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살아있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미 죽은 사체일 뿐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움직이는 시체. 이미 죽은 것이기에 죽지조차 않는 패악(悖惡)의 덩어리.

좀비라고 부르는 것들의 등장이다.

“저런 것에게는 이정도 되는 놈을 써야 된다고.”

그렇게 말하며 바렛은 샷건을 겨눠 단숨에 쏴버린다.

쾅!

권총과는 비교도 안 되는 폭음. 그 앞에 남은 것은 머리가 날아가 버린 시체였다.

본래의 산탄은 넓게 퍼져서 상대를 통째로 뒤로 날려버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좀비가 나타가게 된 뒤로는 몸 일부를 확실하게 파괴하도록 개조된 것이 많다. 상대는 이미 죽어버린 몸. 부숴버리지 않는다면 상처 따위는 있으나 마나기 때문이다.

머리가 사라진 시체가 땅에 쓰러졌다. 아직도 꿈틀거리며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위별로 따로 노는 경련에 지나지 않는다. 어쨌든 좀비도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뇌를 사용한다는 것 같다.

전쟁의 끝 무렵에 등장한 좀비의 존재는 분명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전쟁 중이었던 것이다. 좀비는 그저 새롭게 등장한 적에 지나지 않았다.

총을 쏘고, 안 되면 폭탄으로 박살을 내고, 도시가 좀비로 오염 되었다면 폭격을 해버리면 될 일이다. 민간인에게는 재앙이겠지만 군에게 있어서는 상대하기 쉬운 적일뿐이다.

“쯥. 이 녀석들은 없어지지도 않는구만. 백신은 언제 개발 되는 거야?”

남자는 아직도 꿈틀거리는 좀비를 발로 차서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위에 뿌려지는 기름. 신체를 잃기 전까지는 움직이며 질병을 뿌려대기 때문에 태워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쟁이 끝난 후 본격적인 실험과 연구의 결과 좀비라는 것은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인 것이 밝혀졌다. 어딘지 모를 나라에서 만든 생화학 무기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변종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연구진의 추정이지만,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 한다.

화르륵

불이 붙은 몸뚱이가 금세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미 몸 안에 수분 자체가 살아있을 때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몸 전체에 퍼진 바이러스 자체가 몸을 불에 타기 쉽게 만든다고 한다.

“…….”

푸른 인광을 발하며 불타는 사체. 아직도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몸에서는 있을 리 없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이,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선생.”

좀비의 머리를 날려버린 총을 손질하며 바렛이 충고했다.

바렛은 용병 생활만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는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며 경호를 책임지는 대장이기도 하다. 당연히 좀비와 마주친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잘못하면 홀려버린다고. 살아있는 주제에 좀비처럼 이성이 날아가 버려.”

좀비라는 녀석들은 사람을 습격한다. 물론 습격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삐걱거리는 몸으로는 걷는 것이 고작이다. 하지만 기척이 적어서 어느 사이에 근처까지 접근하기도 하고, 수가 많으면 포위되기도 한다. 더구나 신체가 파괴될 정도가 아니면 이쪽에서 주는 데미지는 노 카운트. 지치지 않는 체력마저 가지고 있으니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희생자도 많이 나오게 된다.

지능도 없고 이성도 없다. 단지 본능처럼 움직이고 살아있는 인간을 덮친다.

사체에서 증식하는 특수한 바이러스. 죽어버린 육체를 점거한 바이러스들은 신경조직 대신 그 육체를 움직인다. 시체의 부패를 막고, 저장된 영양소를 이용해 몸을 조작하고, 뇌를 이용해 그 움직임을 조정한다.

그리고 산 자를 공격한다.

바이러스의 목적은 증식. 하나의 시체를 완벽하게 점거하게 되면 다른 시체가 있어야만 그 이상의 증식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산 자를 공격한다. 시체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과 닮은 것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두르고 습격해온다. 머리가 박살나서도 경련하며 움직이고, 결국은 불로 태워 소거한다. 인간이 웃어넘길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넘실거리는 푸른 불꽃. 과도한 스트레스에 눌린 인간이 그 불꽃에 홀려 미쳐버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겠지. 공포로 인한 것이든, 아니면 살의에 의한 것이든, 광기에 눌려 미쳐버리는 인간은 흔하다. 이렇게 강철 같은 이성으로 무장된 사회라지만 아직도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쩐지 이 근처에는 좀비가 많은 거 같네요.”

“응? 아아, 선생은 이런 지역에 처음 와보는 거지? 이정도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야.”

어느새 담배를 입에 문 바렛이 심드렁하게 말한다.

경계초소를 지나 위험지역으로 나온 것이 벌써 한 달째. 처음에는 일주일에 1, 2번 정도 마주치던 좀비가 이제는 매일 3, 4마리를 마주치게 된다. 과연 정부에서 규제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 밖에는 안 드는 장소다.

“이놈들은 말이야 주변에 인간을 있는 대로 죽여서 좀비로 만들어. 그리고 주변에 인간이 없으며 쓰러져 잠을 자. 동물처럼 겨울잠을 잔다고. 썩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어본 것 같다. 덕분에 좀비에게는 과거의 모습이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증거가 많이 나온다고 했던가.

“예전에는 이 근처에 마을이라거나 도시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하더군. 그게 전부 다 좀비가 되어 있는 거야. 거기에 투입된 수색대나 구조대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리고 이렇게 인간이 들어오면 천천히 깨어나서 모여들지. 우리는 지금 생각보다 위험한 상태라고.”

“음…….”

확실히 좋지 않다. 더구나 지금은 선발대로서 일행과도 떨어져 있는 상황. 이럴 때 좀비가 무리지어 덤빈다면 자칫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위험지역 안으로 들어온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선생.”

다 탄 담배를 바닥에 버리며 바렛이 불안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건 그렇고 선생은 연구원이면서 좀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구먼.”

“뭐, 그럴 수밖에요. 연구원이라고는 해도 저는 사학(史學)쪽이라 서요.”

그렇기 때문에 위험지역으로 나서는 것이다. 좀비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라면 연구실에서 정기적으로 잡혀오는 좀비를 통해 실험을 하고 연구를 하겠지만, 사학은 다르다. 대부분의 자료가 소실 된 만큼, 과거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는 직접 위험지역을 탐사할 필요가 있다.

좀비를 직접 연구하는 자보다 그저 과거의 흔적을 찾는 자가 더 위험한 지역, 더 위험한 상태의 좀비를 만나야 한다니 상당히 큰 아이러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예를 들면 전쟁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확인하는 건가?”

“비슷하죠. 예전 책이나 사진 같은 것들이 더 좋긴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을 파악하는 것도 목적이니까요.”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자료에는 좀비의 모습도 포함 된다.

“방금 그 좀비를 예로 들어보죠. 일단 여성체였다는 것은 파악하셨겠죠? 그럼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은 많아요. 왼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잖아요? 예전에는 그게 연인의 증표라고 했으니 아마 연인이 있었을 확률이 높아요. 그리고 귀걸이는 한쪽에만 했는데, 다른 한쪽 귀에는 귀를 뚫거나 한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 연애 상대가 동성이었다는 거겠죠.

옷은 정장이었지만 화려하게 꾸민 머리 모양이나 머리 장식, 목걸이 같은 장신구가 있는 걸로 봐서 어떤 모임에 참석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러시죠?”

멍하니 이쪽을 보던 바렛이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 사이에 잘도 봤구만. 어쩐지 선생은 연구원보다는 탐정 같은 걸 하는 게 더 낫겠어.”

“설마요. 저는 남에 뒤를 캐는 일 같은 건 잘 못 한다구요.”

“순진한 척 말하기는.”

바렛은 다 태운 담배를 바닥에 버리더니 다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슬슬 돌아가도록 하지. 이제 곧 날이 어두워질 거야.”

어느새 해는 기울어있었다. 선발대로서 주변을 미리 조사하는 것은 이것으로 끝. 다른 방향으로 간 팀들도 조사를 끝냈을 테니 이제는 캠프로 돌아가 이후의 일정을 정할 차례다.

돌아서는 발치에 타다 남은 좀비의 파편이 채였다. 이제 푸른 불꽃 속에서 뼈와 재만 남은 조각이지만, 어쩐지 아직도 움직일 것만 같은 기괴함을 담고 있었다.

약 3개월에 거친 검사와 훈련을 통과해야 가능한 위험지역으로의 탐사. 어째서 그렇게 많은 검사와 훈련이 필요한지 불만을 제기한 사람은 많지만 연구소에서는 애써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가보면 안다는 차가운 비웃음뿐이었다.

확실히. 그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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