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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13 신을 버린 세계 - 5. 단절(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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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버린 세계 - 5. 단절(완)
5. 단절
캠프까지는 기껏해야 100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을 뿐이지만, 성급하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 최대한 천천히 이동하면서 위험하지 않은지 체크하는게 우선이다.
처음 캠프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움직인 거리는 경우 2, 30미터 정도. 이 거리를 움직이면서 걸린 시간은 무려 30분. 덕분에 특별한 문제없이 캠프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좋은 소식이 있다면 아직 총알이 남은 샷건을 얻었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이 있다면 캠프 쪽에는 전혀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 밤의 전투에서 연구원들을 도망가게 하고, 나중에는 용병들도 모두 도망을 쳤었다. 그렇다면 캠프에 있던 좀비들 역시 인간의 뒤를 쫒아 캠프 밖으로 나갔을 것이고, 캠프는 비어 있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캠프에 움직임이 없는 것을 나쁜 소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두 가지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우선 지금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다른 쪽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캠프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 해 성공적으로 도주한 후 다시 복귀까지 한 사람이 지금으로서는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은, 현재 캠프에 좀비가 잠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인간이 없으면 좀비는 잠들어 버린다. 지금처럼 인간의 움직임이 없는 캠프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캠프에 접근하는 것은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고, 거의 한 시간에 걸친 탐색전 끝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가는 거야, 선생.”
“예.”
“50미터야. 중간에 좀비가 나타나도 절대로 멈추지 마. 그리고 도착하면 무기를 찾아서 무장해. 좀비는 그 때 처리해도 늦지 않아.”
“예.”
작전은 간단하다. 캠프까지 남은 거리는 50미터. 여기서 캠프까지 전속력으로 달린다. 좀비는 달리지 못 하기 때문에 중간에 마주쳐도 무시한다. 캠프에 도착하면 우선 무기를 찾아 무장하고 캠프에 있는 좀비나 중간에 등장한 좀비를 상대한다.
그리고 위험할 때는 바렛이 엄호한다는 것이 작전이다. 단순하지만 좀비의 약점을 이용한 효율적인 작전이기도 하다.
“준비해. 후우, 후우, 3, 2, 1, 달려!”
잠시 숨을 고른 후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캠프의 모습은 반갑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모습이었다.
남은 거리는 40미터, 30미터, 20미터, 10미터, 5미터, 한 걸음. 그리고 무사히 도착.
운이 좋았는지 캠프에 도착할 때까지 좀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한시름 덜게 된 것이다. 이제 무기와 탄약을 찾아 무장하기만 하면 어지간히 좀비가 몰려들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게 방어가 가능해진다.
“어?”
캠프 안으로 들어서자 무언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초점을 잃은 망연한 눈, 삐걱 거리는 불안정한 몸에 흔들림, 힘없이 벌어져 있는 입과 그 입 주변에 가득한 핏자국. 그리고 쓰러져 있는 시체 하나.
좀비……다. 무언가 이상하지만 분명히 저것은 좀비다.
“빌어먹을 캠프 안에 있었나.”
바렛이 샷건을 들어 좀비를 겨눈다. 좀비를 죽이기 위해. 아니 좀비는 이미 죽은 존재다. 그러니 이것은 좀비를 박살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좀비를 죽이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잠깐!”
이 좀비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뭐야, 선생?
“저 좀비…… 아니, 저건 좀비가 아니에요. 살아있어요.”
“…… 정말이야?”
“네. 잘 보세요.”
초점을 잃긴 했지만 마르지 않은 눈동자. 벌어진 입에서 조금씩 흐르는 침. 결정적으로 크지는 않지만 가슴의 기복이 있어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할 정도는 되었다.
“빌어먹을…….”
“지금은 착란 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인간이에요. 우선 제압하도록 하죠.”
“미안하지만 선생. 저건 좀비야.”
바렛이 단언했다.
“무슨…….”
“내가 말했지? 살아있는 주제에 좀비처럼 변하는 놈들이 있다고. 그건 미쳐버리는 놈들만 말하는 게 아니야. 잊었어? 좀비는 바이러스야. 몸이 약해지거나 체질상 저항이 떨어지면 죽지 않아도 좀비가 되어버린다고.”
생각도 못한 말이 머리를 울렸다.
“일단 그렇게 산채로 좀비가 되면 천천히 몸이 죽어가. 그리고 그 전까지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고 인간을 죽여. 선생처럼 착각하고 가까이 갔다가 죽는 놈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지금 저기 망연히 서서 울고 있는 것이 이미 좀비라고 말하고 있다.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좀비가 되어버렸다고 하고 있다. 그 육체를 이용해서 손쉽게 인간을 죽이는 악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크흠…… 하지만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좀비가 울기까지 할 줄이야…….”
“응?”
“뇌가 살아있기 때문에 좀 더 고등 사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이건 돌아가면 연구 과제로 건의해봐야겠네요.”
“무슨 소리야, 선생?”
“아니요. 좀비가 울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해서요.”
바렛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울기 누가 운다는 거야? 선생은 저 맛이 간 얼굴이 우는 걸로 보여?”
순간 사고가 뒤틀린다.
“뭐?!”
숨이 가쁘게 변하고, 약간의 구토가 치민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식은땀이 흐른다. 눈앞에 붉게 변했다가 다시 하얗게 물든다.
쓰러지는 인간, 박살나는 좀비, 다시 일어서는 인간, 죽어가는 좀비, 알 수 없는 얼굴, 다른 얼굴, 연구원의 얼굴을 한 용병, 용병의 얼굴을 한 연구원, 기억에 없는 얼굴, 구분 안 되는 것들.
“왜 그래 선생? 괜찮아?”
“바, 바렛.”
“응. 왜 그래?”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저 좀비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음, 연구원은 잘 모르겠는데, 에이미? 엘렌? 뭐 그런 이름 아니었던가?”
“우욱!”
더 이상 구토를 참을 수 없었다.
“우웨엑! 우엑! 켁!”
“어이 어이.”
엘렌이다. 27살의 꽤 우수한 여성 연구원. 항상 연구원복의 소매를 걷어 올려 클립으로 고정 시키는 버릇이 있어서 옷만 봐도 그녀라고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그녀의 얼굴은 엘렌이 아닌 걸까. 왜 엘렌의 얼굴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쥬리아의 얼굴이 있는 것일까. 20대의 여성이 아닌 30대의 남성이 엘렌의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가 뭘까.
“우욱…….”
“쳇, 기다려보라고 일단 저 좀비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안 돼…….”
뭐라 설명할 틈이 없다. 아니 설명한다고 해서 알아듣기는 할까?
“…… 무슨 짓이야, 선생? 선생까지 미쳤어?”
“하아, 하아. 멈춰.”
일단 바렛의 총구 앞을 막아서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감상에 빠지지마! 저건 좀비야!”
“크윽!”
옆으로 밀쳐내는 손길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이제야 알았는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충격에서 알아낸 것인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멈추라고!”
“미쳤군!”
빠악!
“크악!”
이번에는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번쩍하는 섬광이 일고 몸이 무겁게 늘어진다. 피가 터졌는지 시야의 한 쪽이 붉게 물들었다.
“미안하지만 잠깐 자고 있으라고, 한숨 자면 괜찮아질…….”
탕!
“크…… 어, 이…… 비, 빌…….”
“하아, 하아, 빌어먹을 멈추라고 했잖아.”
몸이 무겁긴 하지만 움직이지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걸음을 옮기는 것도 땀이 흐를 정도로 힘들기는 하지만 억지로 움직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떨리는 걸음을 옮겨, 바렛의 시체를 지나 쥬리아에게 다가갔다.
“인간의 정신은 말입니다. 전기 신호의 집합체에요.”
과거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었다. 영혼은 육체를 움직이는 근간이고, 정신과 의식의 결정체로서 그 몸을 인간으로서 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부터 온다. 신이라는 포괄자(包括者)가 있어 모든 영혼을 내려 보내고 다시 회수한 것이 과거의 세계였다. 신으로부터 나와 생명을 얻고, 생명이 다 하면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
신과 인간 사이에 순환 관계. 그것으로 인간의 정신은 안정을 갖게 되었다.
“고통이나 공포는 몰라도 되는 안전한 상태죠. 그러니까 쥬리아씨.”
하지만 세계는 급변했다.
인간의 삶은 신을 떠나고, 문명에는 더 이상 환상과 신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과학은 신성에 승리하였으며, 전기는 훌륭하게 인류를 손에 넣었다.
세계는 철저하게 해부 당하고, 재단되어 인간의 손 안에서 변형 되어간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신을 떠난 것이다.
신과 인간의 단절. 이로서 인간의 정신은 죽음 이후에 갈 곳을 잃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전기 신호의 집합체다. 죽음을 맞이해 생명 활동이 정지 되면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정신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전기 신호 뭉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사고를 하는 고등 집합체인 것이다.
과거의 인간은 죽은 후에 갈 곳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집합체로서의 힘을 잃고 세상에 흡수 된다.
그러나 신과 단절 된 이후의 인간은 아니다. 이들에게는 죽은 이후 갈 곳이 없었다. 인간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 혹은 강렬한 자극에 사로잡힌 채 당한 죽음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다.
죽음 직후에 생기는 정신만 남은 순간. 본래는 사라져야 할 정신이 강렬한 의식을 가지게 되버린다. ‘갈 곳이 없다’라는, 근본적인 공포에 휩싸여 사라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쥬리아 씨는 잠시 긴 잠을 잘 뿐이에요. 침대는 이 세상 전체가 되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버텨도 육체가 없는 정신은 에너지로 소비 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이러스와의 결탁이다.
바이러스는 육체가 없어진 정신에 물질로 이루어진 머물 곳을 마련해주고, 정신은 바이러스를 통해 주인 없는 육체를 차지하고 바이러스를 증식 시킨다. 정신이나 바이러스나 서로의 역할에 따른 상호 작용 같은 것을 따질 새는 없겠지만,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은 것이다.
“한숨 자고 나서 부르면 그때 다시 나오시면 됩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여기까지 파악하고 나면 좀비에 의한 착란 증세가 모두 폭력 성향으로 나타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애초에 착란이 아니라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전혀 다른 정신이 간섭을 해오니 착란과 비슷한 형태로 증상이 나오게 된다.
산 채로 좀비가 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증상이 좀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 본래의 정신이 충격으로 구실을 못 할 정도로 흩어졌다거나 애초에 몸에 수용 공간이 남는 경우에는 죽지 않았어도 죽은 자의 정신이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장기 휴가입니다. 맨날 졸지만 말고 가서 주무세요.”
쥬리아가 힘없이 쓰러졌다. 아니, 이제 엘렌이다. 쥬리아는 장기 휴가를 받고 잠을 자러갔다.
“후우…….”
엘렌의 상태는 생각보다 양호했다. 단지 탈진 증세가 조금 있을 뿐이다.
“으응…….”
“정신이 들어요?”
“여기는…….”
“일단 쉬어요. 그 후에 다 설명해줄게요.”
엘렌은 멍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아마도 아직은 다른 정신이 간섭한 충격으로 멍한 상태일 것이다. 어쩌면 기억 장애 같은 후유증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히…….”
“아차.”
옆에 있던 시체를 보는 순간 엘렌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진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윽, 엘렌! 엘렌?”
비명과 함께 발작을 하며 몸을 뒤트는 엘렌.
실수였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 했는데 시체를 보게 했으니 이렇게 되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엘…….”
탕!
“……렌.”
흩뿌려지는 피와 뇌수. 아직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핏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엘렌이 죽었다. 사인은 자살. 발작을 하며 몸을 뒤트는 것 같더니 어느새 권총을 빼앗아 들고 자신의 머리를 쏴버렸다.
“으…….”
아마 옆에 있던 시체를 보는 순간 모든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 광란의 살육극과 자신 안에 들어왔던 광기의 결정체. 그리고 자신이 직접 사람의 목줄을 물어뜯어 죽인 것까지.
눈앞에서 좀비가 죽어도 파랗게 질리는 감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본인이 직접 사람을, 그것도 이빨로 물어 죽였으니 자살을 할 정도로 망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으으…….”
당연하다.
“크으…….”
당연…….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세계는 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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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적당히 생각해서 적당히 썼지만 서도 ㅋ
진행 템포가 다소 빠르기도 하고 그런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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