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단편

신을 버린 세계 - 3. 증식

부들이부들 2012. 5. 13. 12:47

3. 증식

캠프에는 이미 많은 인원이 돌아와 있었다.

총 인원 98명의 대규모 탐사대. 아무래도 탐사 위치가 위험지역인 만큼 연구원에 안내자, 경호를 맡은 용병까지 합쳐져 상당한 규모의 탐사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구원들의 수를 웃도는 경호원들 때문에 더 규모가 커진 것이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은 이미 사라졌다.

이런 망가진 장소에서 펜만 굴리던 연구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오오, 좋은 냄새가 나는구만.”

“식사 준비 중이군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사실 시간은 아직 오후 다섯 시도 되지 않았다. 조금 이르지 않을까 싶은 저녁이지만 지금은 식사라도 해두는 편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거의 백을 헤아리는 수의 사람이 모여 있지만 그다지 소란스럽지는 않다. 다들 말을 잃고 극도로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용병들은 모르겠지만 연구원들에게는 좀비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특히 1주일 전쯤 10여세 정도로 보이는 좀비 몇을 태워버린 이후로는 가벼운 착란 증세를 보이는 사람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저녁 준비가 끝나고 배식이 시작 되었지만, 배식을 안 받는 사람도 있었다. 대신 받아서 억지로 손에 쥐어줬더니 손에 들고 먹을 생각을 않는다.

창백한 얼굴에 불안한 표정, 떨리는 손발. 아마도 좀비들과 마주치고 돌아온 연구원 중 한 명일 것이다.

잠시 상황을 보고 있으니 바렛이 다가왔다.

“이거 좋지 않구만. 선생, 이쪽으로 좀 와봐.”

바렛은 캠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을 이었다.

“봤어?”

“네. 확실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아 보이는 인간만 열 명이 넘어가고 있어. 우리 쪽 신입 중에도 그런 놈이 있다고.”

생각보다 문제는 심각했다. 연구원 중 문제가 발생한 인원은 당장 식사 중에 확인한 것만으로도 13명. 간이 숙소 안에서 나오지 않은 인원을 합치면 20명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의 수가 38명이니 이것은 약 절반의 인원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 용병들이다. 착란 증세를 보이는 용병은 아직 경험이 적은 신입 대원들을 중심으로 약 4, 5명. 수는 적지만 이들은 전투 훈련을 받고 강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 위험도로 따지자면 연구원 전체보다 용병 한 명이 더 위험하다.

“접어야겠군요.”

“응?”

“이 이상 탐사를 계속 했다가는 끝장입니다. 내일 바로 돌아갈 수 있게 준비해야겠어요.”

“어이 어이 선생, 괜찮겠어?”

언제 또 허가가 나올지 모를 위험지역의 탐사. 이번 탐사만 해도 거의 1년에 걸친 심의와 회의 끝에 나온 결과였다. 별 성과 없이 이번 탐사가 끝난다면 다시 허가가 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어쩌면 이번 탐사가 실패로 보고 된 이후에는 4, 5년 정도는 다시 나오지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도 우선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사고가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대로 탐사를 강행했다가는 한 둘이 다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영영 나올 기회가 없을 것이다.

“탐사야 다시 나올 수 있지만 목숨은 하나니까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다.

“과감하구만. 뭐 이쪽에서도 그러는 게 훨씬 편하니까.”

“우선 모두에게 알리세요. 미리 짐을 챙겨두고, 철수는 내일 아침 식사 후입니다. 지금 말해두면 지금 이 분위기는 조금 풀리겠지요.”

“알겠수다, 대장 선생.”

이번에 계획된 탐사 지역은 상당수의 인간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 되는 소규모 도시. 비록 거기까지 가지는 못 했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다음 탐사는 군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계획이 필요하다. 인간이 많았던 장소를 간다는 것은 결국 좀비가 많은 장소를 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 망가지는 인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군이 앞장서서 좀비를 처리해주지 않으면 탐사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이 이번 탐사의 유일한 성과였다.

 

평소보다 이른 식사 후에 이어진 철수 명령. 일단 그것만으로 캠프의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무표정하고 불안했던 얼굴에 조금씩 활력이 돌아오고 있었다. 짐을 챙기면서 의욕적으로 움직이면 조금 더 좋은 얼굴이 될 것이다.

상태를 보아하니 그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인원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 인원들도 오늘은 푹 잘 수 있겠지. 내일은 그동안의 여정을 돌려 철수를 하는 날이다.

이곳까지 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한 달. 돌아가는 데는 그 반도 안 되는 시간이 걸린다. 늦어도 2주면 안전하게 연구소로 돌아갈 수 있다.

그 후에 다시 몇 달 정도는 이상 증세가 없는지 진단과 검사를 반복 하게 될 테지만, 적어도 생명의 위험은 없다. 인간과 비슷한 것을 부수고 태우는 일도 없다.

푸른 인광 속에서 들릴 리 없는 비명을 들을 필요도,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위협을 느낄 필요도, 옆에 있던 사람이 좀비가 되어 덤비지 않을까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분명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피냄새?”

분명 그런 생각을 하며 잠들었을 터였다.

“크흐…….”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푸욱 우득

그럴 예정이었다. 그랬어야했다.

하지만 뭔가가 망가져버렸다.

“흐…….”

어둠 속에서 빛나는 이빨. 번들거리는 눈동자. 그리고 나이프.

탕!

“크아악!”

좀비라면 지르지 않을 고통에 찬 비명.

좀비는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른다. 몸에는 수분이 많지 않아 눈동자가 말라버린다.

모든 정보가 말해준다. 상대는 좀비가 아니다.

탕!

“아악! 크흐윽!”

그렇기에 이런 작은 권총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

퍽!

간신히 일어서는 상대를 발로 차 천막 밖으로 밀어냈다.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비명이 그 뒤를 잇는다.

“무슨 일이야!”

총성 때문일까. 밖은 이미 깨어난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명이 밝혀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을 기는 자와 총을 든 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럴 때는 누가 봐도 총을 든 쪽이 더 위험해보일 것이다.

물론 상관없는 일이지만.

“살려줘! 살인마! 날 죽이려…….”

탕!

“끄아아악!”

바닥을 기는 남자에게 다시 한 방을 먹여버렸다. 총 쏘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는 건지, 아니면 그저 사람을 죽이는데 소질이 없는 건지 비명만 지를 뿐 좀처럼 죽어주질 않는다.

“이봐, 선생. 그쯤 해두라고.”

완전히 얼어버린 연구원들과 경계의 빛을 띄우는 경호원들. 그 사이에서 대표로 나선 것은 역시 바렛이었다. 일단은 경호원의 대장이기도 하고, 이런 피비린내 나는 경험도 많으니 자연스럽게 나서게 되었겠지.

“후우, 안에 시체가 있으니 좀 꺼내주시죠.”

“…… 제이크.”

제이크라고 불린 자가 나서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등을 켠다.

“빌어먹을!”

연구원을 들여보냈으면 비명이 나왔을 테지만 그래도 경호원을 보냈더니 욕설 정도로 그친다.

털썩 털썩

단숨에 목을 찔려 사망한 시체 두 구. 부릅떠진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 자국이 있다.

“몇 명 더 있습니다.”

제이크가 보고 했다. 몇 명이 더 죽어 있다고.

“봤습니까?”

“아아, 알겠어, 선생.”

꽈직

“끄아아아아아악!”

두꺼운 군화가 나이프를 쥔 손을 밟아 뭉갠다. 피가 튀고, 비명이 울리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섞인다.

그리고 이 가는 소리가 섞인다.

시체는 나이프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바닥을 기는 작자의 손에 피 먹은 나이프가 들려있었다.

“미안하게 됐어, 선생. 설마 신참도 아니고 굴러먹을 만큼 굴러먹은 놈이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쓰러져 꿈틀 거리는 남자는 경호원들 중에서도 꽤 베테랑이었던 것 같다. 겉보기에는 별문제도 없고, 좀비를 상대한 경험도 많아 바렛으로서도 믿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 경험이 문제가 된 경우다.

아마도 저 남자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좀비와 죽음에 대해 공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숨기고, 해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번, 좀비를 마주 할 때 마다 조금씩 공포를 쌓아 왔다.

지금까지 억지로 참었던 것들. 숨겨왔던 만큼 그 반동으로 생기는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의 몇 배는 되었겠지. 자존심 때문이든 세뇌성의 정신교육 때문이든 겉으로는 정상을 유지해왔지만, 그것도 여기서 끝이다. 차근차근 쌓여온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잠식해서 결국 이성을 삼켜버렸다.

“히익! 히이익!”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기는 남자. 죽음에 대한 공포로 미쳐버려 다른 이에게 죽음을 강요한 결과가 이것이다.

죽음이 두렵다면 일을 그만 두고 떠났으면 되는 일이었다.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면 더 강하게 나아갔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나약함.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내리는 방식으로 자신은 죽음을 지배한다는 추잡한 의안을 얻으려한 비천한 작태. 그 결과 지금은 자신이 저지른 일로 더욱 빠른 죽음을 받게 되었다.

“살려줘!”

“닥치고 있어!”

퍽! 퍽!

정신을 못 차리고 비명을 지르는 남자에게 제이크가 달려들었다.

다소 과격한 주먹질. 커다란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코피가 튀고 깨진 이빨이 뿜어진다.

“빌어먹을!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지미가!”

아마도 죽은 자 가운데 친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손에서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고 주먹을 휘두를 수 있는 거다. 분노와 슬픔이 육체의 고통을 무시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은 봐줄 수가 없다. 이런 사건을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질질 끌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봐 그 쯤 하고…….”

“어?”

주먹질을 하던 남자가 멈춰 섰다. 다만 그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 빌, 어먹…….”

모로 쓰러지는 육체. 그 등에는 나이프가 하나 박혀 있었다.

“이 개자식이! 무슨 짓이야!”

불같이 화를 내는 바렛. 제이크의 등에 칼을 박은 것은 이제 경우 20살을 넘은 것 같은 어린 용병이었다.

“대, 대장이야 마, 마, 마, 말로 뭐, 으…… 뭐하는 거야……. 조, 조, 좀비가…… 좀비가 헹크를 죽이려고 하는데!”

“미친…….”

숨이 넘어갈 듯 흐트러진 호흡과 초점을 잃고 이리 저리 굴러다니는 눈동자. 명박한 착란 증세다.

“뭐뭐뭐뭐야. 대, 대…… 흐으윽, 대장도…… 좀, 비가 된…… 거야? 으응? 으…… 으아악!”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며 온 사방으로 나이프를 휘두른다. 무언가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칼로 위협하고, 찌르고, 주춤 뒷걸음질 친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지만, 초점이 뒤틀린 그 눈에는 무언가 보이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한 명이 미쳐서 몇 사람인가를 죽이고, 한 사람은 그 살인범을 때려죽이려 하였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명이 미쳐서 그 사람을 찌르고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있다.

좋지 않다. 이건 매우 좋지 않다. 이래서는 금방이라도…….

크릭

“엎드려!”

타앙!

“커억!”

늦었다. 누군가 총에 맞았다. 공이를 당기는 소리를 듣고 바로 신호를 보냈지만 역시 늦었다.

이번에는 연구원 중 한 사람이다. 경호원들은 좀비를 상대하기 때문에 이런 작은 소리가 나는 총 따위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 총의 주인은 분명히 연구원이다.

이해는 간다. 바로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죽이는 상황. 인간과 비슷한 것에게 습격 받고, 그것을 태우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제는 아예 인간이 공격하고 인간이 죽어간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이미 이성을 삼켜버렸지만, 살인에 대한 거부감에 주저했던 나약한 인간이 드디어 한계를 넘어섰다.

“좀비다!”

“도망쳐!”

“사람 살려!”

비명이 난무하는 광기의 도가니.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진정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니, 자신들이 살기 위해 착란을 일으킨 사람들을 때려눕히고 있다.

타앙!

칼이나 총을 들고 설치는 상대에게는 주저 없이 발포. 죽지만 않는다면 어디 한 군데 쏴서 빨리 제압하는 쪽이 피해가 적다.

쾅!

때로는 바로 죽여 버리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진압하는 쪽 역시 점점 광기에 눌려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완전히 정신 나간 인간들이 좀비처럼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총에 맞은 것조차 모르고 덤벼드는 인간들. 과도한 아드레날린과 착란 증세가 이성뿐만 아니라 통증까지 날려버렸다. 이래서는 좀비와 다를 것이 없다.

퍼석

확실히 사람의 머리가 부서지는 소리는 별로 듣기 좋은 것이 아니다. 근처에 있었다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피와 뇌수에 멀쩡한 사람도 미쳐버릴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머리만 사라진 채 쓰러지는 시체. 차라리 피와 뇌수가 뿌려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 피가 없어?”

머리가 박살난 시체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몸의 경련이야 잠시 그럴 수 있다지만, 피는 아니다. 그리고 그 시체에 입고 있는 옷은 연구원의 것도, 그렇다고 경호원의 것도 아니었다.

“빌어먹을! 젠장! 모두 정신 차려! 진짜 좀비다!”

어느 샌가 광란의 한복판에 스며든 좀비들. 이렇게 모두가 미쳐 있어서는 누가 좀비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커륵!”

쓰러져 있던 누군가가 피를 토했다. 총에 맞은 쇼크로 기절이라도 했다가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어나는 타이밍이 별로 안 좋다. 이런 미친 광경을 보았다가는 다시 기절하거나 함께 미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조금씩 몸을 일으키는 상대를 보니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

“빌어먹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제이크. 진작에 죽어버렸던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