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 오브 레전드 캐릭터 팬픽 - 이즈리얼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이곳에는 아무래도 공기의 흔들림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는 것 같다. 공기에 파장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공기를 안정시키며 더욱 천천히. 이제 곧 목표에 다달을 수 있다.
고작해야 10미터 정도다. 그 정도도 못 참아서는 세계 최고의 고고학자가 될 수 없지.
이곳의 정보를 얻게 된 것은 3일 전. 산골마을의 꼬마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잡은 단서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도서관을 뒤집어 놓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뭐 그건 사서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번 탐사가 끝나면 사서들에게 술이라도 한 잔 사줘야 할 것 같다.
꼬마들의 노래 내용은 단순하다.
[먼 옛날 영웅들의 시대가 있었네.
그들은 진정한 왕을 뽑기 위해 밤낮으로 싸웠네.
아름다운 빛과 시커먼 어둠이 섞이고,
산이 무너지고, 강이 생겼네.
그중 누가 왕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하지만 그 왕이 무너진 산 속에 산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네.]
아마도 과거에도 지금의 리그와 비슷한 전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잊혀진 전장이지만 아마도 최고의 챔피언을 선발하기 위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화려하고, 패왕이라 칭해질만한 이들의 전장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거기에는 보상이 있었을 것이다. 어떤 마법적 도구일지도 모르고, 재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지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었을지도 모르지. 고고학자라는 개인적 취향을 따지자면 상징물이 가장 구미가 당기지만, 재물이나 마법 도구도 나쁠 건 없다. 어쩌면 위글 랜턴을 발견한 이후 가장 큰 사건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보상이 없는 전장이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실력을 겨루기 위한 전장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래에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 있다.
[그중 누가 왕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하지만 그 왕이 무너진 산 속에 산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네.]
누군가 한 명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전장의 폐허가 된 산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마지막 영웅의 흔적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어떤 기록이라도 남겨 놓지 않았을까? 그 당시 있었던 전장에 대한 역사 같은 것 말이다.
필트오버 도서관 한쪽을 완전히 어질러 놓고 얻은 정보에 따르면 분명 고대에도 리그와 같은 전장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거기에 대한 기록이 없어 그저 있었다는 사실만이 한 구석에 쓰여 있을 뿐이었다. 즉, 이 탐험에 성공하면 고대 리그에 대한 최초의 발견자가 되는 것이다.
관련된 문서를 더 찾아보니 추정 논문이 몇 개 나왔다. 고대에 대한 기록과 지금을 비교하여 전장을 추측해보았다거나 그 흔적이 남아 있다면 어떻게 남아 있을 것인지, 당시 마법과 공학은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실제 도움이 되는 자료는 얼마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남은 것은 그동안 쌓은 탐험가의 스킬을 믿는 것 뿐.
왕이 살던 곳은 무너진 산 속이라고 했다. 노래가 불리는 지역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탐색해본 결과 거대 산맥에서 유독 평야지대가 생긴 곳이 있었다. 한 쪽에는 강이 있었는데, 폭이 좁기는 해도 상당한 깊이라고 한다.
이곳이 바로 산이 무너지고 강이 생긴 곳이라 추정된다. 다음에 할 일은 이 주변 어딘가에 자리 잡았을 왕의 거처를 찾는 것이다.
탐사 이틀째에 내린 결론은 왕의 거처가 산 중에 있지 않고 산 속, 그러니까 땅 안쪽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탐사장비를 동원해보았지만 땅위에서는 특별한 마력이 검출 되지 않았다. 단지 주변을 막는 결계의 마력이 희미하게 땅 속에서 검출될 뿐이다.
주변 동물의 흔적들을 찾았다. 결계와 같이 왜곡된 마력은 민감한 야생 동물들을 자극해서 접근을 못 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동물의 흔적이 가장 적은 곳에 왕의 거처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문제라면 그렇게 해서 찾은 입구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라는 사실이다. 산 속에 평야가 있는 것도 웃기는데 이제는 그 평야 한쪽에 깊은 미저갱이 있다. 동굴이나 절벽 탐험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곳은 지반 구조가 비정상적이라 불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 들어갈 것은 아니지만.
피트오버에 고용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보라면 좋은 탐험장비를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사용하는 로프만 하더라도 실처럼 가늘지만 사람 한 명 정도의 무게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마법 도구다. 덕분에 조금만 챙겨도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헬멧에 마법등을 켜야하는 정도까지 내려오자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단순히 깊은 곳에 정체된 죽은 공기가 아닌 무언가 마법적 작용 같은 것이 느껴졌다.
끼릭
문제가 생겼다. 로프가 짧다. 일단 주머니에 넣어온 돌맹이를 던져보니 바닥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략 10미터 가량,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웅
거리가 정확하지 않아 바닥보다는 조금 위로 순간이동 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충격이 굳어진 몸을 풀어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바닥까지 내려오자 보이는 것은 문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 구조물이었다. 높이가 대략 3.5미터 정도는 되는 상당한 규모다. 그동안 정리한 자료와 경험에 의하면 이런 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이 시작된다.
위이이이잉
무언가 기계적인 움직임이 시작 된 것이 느껴진다.
만 하루 동안 이곳을 헤맨 결과 대략적인 구조라거나 함정의 원리는 다 파악을 했다. 바닥에 구멍이 뚫리는 원시적인 함정에서부터 화살이 날아오는 복합 구조의 함정, 마법에 의해 순간적으로 진공상태가 되는 함정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구조 자체는 단순하게 마지막에 있는 왕의 방으로 이어져 있다. 그 안에 최후의 영웅이 남긴 유물이 있고, 그 유물의 힘으로 이곳에 마법적 함정들이 움직인다는 것도 파악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이곳 지반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스윽
거의 1분에 걸쳐서 한 걸음을 옮긴다. 제대로 된 마법사나 공학자들을 데려왔으면 좀 더 쉬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스윽
목표는 이곳의 마지막 방 중앙에 있는 보석.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고 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보석이다.
스윽
설마 마지막 함정이라는 것이 공기의 움직임을 이용한 것일 줄은 몰랐다. 이 마지막 방 안에서 생기는 진동이 벽을 통해 증폭되게 만드는 원리다. 밤에 새겨진 마법으로 인해 작은 진동이 증폭 되어 반대쪽으로 가고 그 진동이 다시 증폭되어 반대 벽을 치고……. 원래대로라면 증폭된 진동으로 내부에 있는 생명체를 부숴버리는 용도였겠지만, 지반이 약해진 지금은 이 왕의 거처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스윽
어지간하면 마법을 이용해 단숨에 보석을 탈취하고 싶지만, 이곳에 새겨진 결계는 마법조차 진동으로 받아들인다. 몸을 크게 움직이거나 마법을 사용하면 함정이 발동하는 것이다. 덕분에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스윽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보석을 챙기면 마력의 공급이 끊기기 때문에 함정이 무력화 된다.
오랜 시간 그 많은 함정들을 유지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보석이다. 그 효용성이나 역사적 가치, 마법적 가치 등을 헤아릴 수 없는 물건임이 틀림없다.
스윽
드디어 도착. 또 다시 역사의 한 순간을 손에…….
손이 없어졌다. 손뿐만이 아니라 손목이, 팔이, 어깨가 서서히 사라진다. 허공에 뜨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발이, 다리가, 허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
이건 아니다.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절대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단숨에 함정이 발동할 것이다.
천천히 사라지던 몸은 이제 목까지 올라와 머리를 삼키고 있었다.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벽에 새겨진 마법이 발동하는 것이 보였다.
“으아아아아! 제기랄!”
갑자기 덮쳐드는 강렬한 햇빛. 지금까지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햇빛에 노출된 탓인지 눈물이 흘렀다. 이제 왕의 거처는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에 소리까지 질렀으니 확실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허탈함과 우울함이 밀려오지만,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기계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end